대구호빠 대구역사4
안녕하세요
호빠 No.1 대구호빠입니다.
오늘도 역시 대구 역사에 대해 한번 알아보실게요
근대
대구는 경상도 감영 소재지로서 영남지방의 중추기능을 계속해서 수행해 오다가, 1895년 지방제도의 개혁으로 8도에서 23부로 개편됨에 따라 대구관찰부가 설치되었고 예하 23개 군을 관할하였습니다. 이듬해 전국을 13도로 개편하면서 대구부는 대구군으로 개칭되는데, 부청 소재지로서 그 관할구역과 지위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을사늑약으로 일제의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1906년 그 산하기관인 대구이사청이 설치되는 등 일제의 국권침탈은 가속화 되었습니다. 1910년 이사청을 폐지하면서 대구군은 다시 대구부로 바뀌게 되며, 부제는 1945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1907년 대구의 서상돈, 김광제 등이 중심이 되어 기울어져 가는 국권을 금연, 금주로 되찾으려는 평화적이고 자발적인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여 전국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또한 1915년 서상일 등은 영남지역의 독립투사들과 함께 조선국권회복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3 · 1만세운동에서 대구지역의 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1927년에는 신간회 대구지회가 결성되어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의열단원 장진홍에 의한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1930년대 이후에도 학생들의 비밀결사운동이 계속되었고, 국권회복과 자주독립을 위한 지속적인 항일 투쟁이 전개된 고장이었습니다.
출처: 대구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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